책 소개
포에틱 워크 시리즈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시대 창작자들의 시집을 엮습니다. 고유의 시선으로 세계를 느끼고 표현하는 이들의 자유로운 언어를 책으로 만듭니다. 종이 위에서 함께 걷고 나아갑니다.
[들어가는 말]
풍경(風磬) 앞에 앉아 있다. 새 소리, 풀벌레 소리. 물기 어린 흙냄새, 풀냄새. 햇빛, 바람, 물결, 영혼. 어떤 사랑이 시간 속을 흐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.
빛을 등진 채 시간을 스케치한다. 어느 날의 창문이 눈앞에 흐르고, 향기를 맡으면 가까운 미래가 나타난다. 어떤 예감 같은 단어들이 사르르 펼쳐진다. 단어 몇 개를 주워 물끄러미 들여다본다.
말로 다 설명할 수 있는, 누구든지 알아듣고 떠올릴 수 있으며 그저 보이는대로 들리는대로 묘사하면 되는 무엇이 아니라,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고 미묘하게 어딘가 수상쩍은, 온 힘을 다해 써내도 전달할 수 없을 것 같은, 그래서 결국 나라는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분명한 느낌들을, 그런 것들을 아우르는 내 세계의 사각(死角)에 관해 말해보고 싶다.
누가 들어주지 않아도 풀어놓고 싶다. 단어들의 건반을 연주하듯이, 산책로에서 세상에 없는 멜로디를 허밍하듯이.
그런데 이 책을 엮는 동안, 오래 전부터 내 안을 서성이고 있던 한 아이가 사라졌다. 시간 밖으로 숨어버린 것이다. 그 아이는 나일까? 왜 숨어버렸을까? 이제는 묘연한 일이다.
책속으로
떠오르는 이름들을 중얼거린다. 밤공기를 곁들여 발음을 음미한다. 기억의 껍질이 입 안에 까슬거린다. // 그러고 보면 사람 이름은 참 이상하지. / 발음할수록 흐릿해져. / 또 새로워져. / 말할 수도 부를 수도 없는 이름들이 제일 이름 같아. -P.21, 「발코니가 있는 정물」
세계는 / 모호한 질문과 / 덮어둔 그리움과 / 어색한 혼잣말로 가득한, / 몽상의 / 예배당이다. // 그곳에 아름다운 시절은 없어. / 아름다움만 있지. -P.33, 「아름다운 시절」
긴 산책, / 오랜 겨울 여행, / 뒤늦게 발견한 선물, / 반복되는 꿈의 텍스트, / 비밀과 예감, / 시공간을 가두기. // 이게 다 훌륭한 유물들이죠. / 미래로는 가치를 매길 수 없을 거예요. -P.47, 「바다 건너의」
누구나 누군가의 유실물이고 보관함이다. / 목소리일까? 뒷모습일까? // 우리들의 이야기에 / 실제로 가능한 / 시나리오의 수는 / 거의 / 무한하다. -P.67, 「사라진 미래」
슬픔은 삶보다 흐릿하고, 슬픔을 가까이 두고 사는 사람의 영혼은 실은 누구보다 강렬해. 차갑게 불타오르지. // 데자뷔 속의 당신이 입술을 떼면…… // 육체의 슬픔에 관한 모사를 연습하는 중이다. // 꽤 오래된 되풀이이다. -P.75, 「슬픔 연습」
무대 위에서, 그곳에만 존재하는 / 끝이 있는 시간 속에서 / 우연의 경계에서 / 어떤 자각의 너머에서 // 한 겹의 / 새 영원이 돋아나고 있다. -P.105, 「이야기 씨앗」
흩어져 있는 섬들로부터 / 기억의 어스름을 모아 / 사랑의 해안으로 실어 나른다. // 그러나 그것은 기억일까? / 그러나 그것은 사랑일까? / 그러나 그것은 -P.119, 「라이프타임」
시간의 잡초가 자라는 창가에 / 초록 빛깔의 / 나비들이 아른거린다. // 이것은 일종의 최면이다. // 어떤 기억의 한 장면을 구성하는 사물들은 실제보다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다. / 느낌은 공기처럼 떠다닌다. // 이것은 착각도 환상도 아니다. -P.135, 「레미니센스」
어떤 말 뒤로는 반드시 긴 침묵이 이어진다. // 말이 되지 않는 말들이 목 아래로 / 흘러나와 / 침묵의 모포 위를 굴러다닌다. // 내가(네가) 그린 구름들이 저 벽에 걸려 있다. // 이 말은, 이 책은, 저 구름 속에 있다. -P.155, 「벽에 걸린 구름」
시와 산문을 씁니다. 단어가 지닌 힘을 믿습니다. 밝은 안개 속을 거닐고 있습니다. 『사랑의 몽타주』, 『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는지』, 『아무도 없는 바다』, 『영원에 무늬가 있다면』, 『빛과 안개』 등을 썼습니다.
상품의 사용후기를 적어주세요.
게시물이 없습니다
상품에 대해 궁금한 점을 해결해 드립니다.
게시물이 없습니다